나. 각종 하위 통치이념정치이념 | 2009

나. 각종 하위 통치이념

(1) 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제일주의

동구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소련이 해체되자 북한은 엄청난 충격을 받 고 체제유지에 총력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정권이 사회 주의 몰락의 도미노 현상을 차단하고, 변화의 물결이 침투하지 않도록 주민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내놓은 두 가지 하위 통치이념은‘우리식 사 회주의’와‘조선민족제일주의’이다.


북한은 1980년대 말부터‘우리식대로 살자’는 구호를 대대적으로 내 세우면서 이른바 주체사상에 기초한다는‘우리식 사회주의’를 집중 선 전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동구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해“오늘날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 의가 좌절한 것은 일시적 현상이며 인류가 사회주의에로 나아가는 것 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력사의 법칙”이고 사회주의의 일 시적 좌절의 이유는 주체사상과 같은 위대한 사상이 없었고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동구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에 대해서는“제국 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경제협력과 원조를 미끼로 침 투해 들어온 반동적 책동의 결과”라고 입장을 정리한 다음“ , 사회주 의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화와 정치에서의 다당제를 허용하는 것은 결 국 사회주의 사회의 기초를 허물고 인민의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반혁 명적 책동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대신“우리식 사 회주의 체제는 인민대중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라고 선전하면서“수령, 당, 대중이 일심단결하 여 사회주의 제도를 튼튼히 고수하고 사회주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시 켜 나아가기 위해 몸바쳐 투쟁하자”고 주민들을 학습시켰다. 즉‘우 리식 사회주의’란‘영원불멸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가장 독창적이고 우월한 사회주의, 다시 말해서 인류의 참된 복지생활이 보장되는 이상 사회를 구현한 정치제도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민들에게는 어떠한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한 걸음도 물러서거나 주저함이 없이 김정일 중 심으로 굳게 뭉쳐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켜 나갈 것을 촉구하였다.


한편 2002년 1월 신년 공동사설에서“수령이 탁월하고 사상이 위대 하며 군대가 위력하고 제도가 우월하기에 우리식 사회주의 위업은 반 드시 승리한다”라며‘우리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령·사상·군대·제도의‘4대 제일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조선민족제일주의’는 1986년 7월 김정일의 당중앙위원회 책임일 꾼들과의 담화‘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1989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에 게 행한 김정일 연설‘조선민족 제일주의 정신을 높이 발양시키자’에 서 본격 강조되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북한주민들에게 집중적으 로 교육되었다.


북한은 조선민족제일주의의 원천이 첫째 김일성과 김정일이라는 지 도자, 둘째 주체사상, 셋째 혁명전통, 넷째 ‘우리식 사회주의’, 다섯째 민족의 고유한 역사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조선민족제일주의는 민족적 우월성을 내세워 붕괴된 여타 사회 주의 국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내부적으로 주민들의 사상적 동요를 막고 체제결속을 도모하기 위해 제창된 하위 통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남 측면에서는 민족대단결 논리를 뒷받침하여 통일전 선을 구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에 도 불구하고 많은 자재와 노력을 들여 1994년 10월 단군릉을 완공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2) 붉은기 사상

김일성 사망(1994.7), 자연재해 등 체제위기 국면이 전개되던 1995년 부터 김정일은“적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사상이 희어지는 것이나, 우 리는 붉다”며 사회주의 붕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를 지키는 보루로 서 자신을 부각시키면서, 사회주의 순결성·체제보루를 상징하는‘붉은 기 사상’을 내놓았다.


‘붉은기 사상’은 1995년 8월 28일자 노동신문에‘붉은기를 높이 들 고 나가자’라는 논설이 실린 이후부터 북한의 각종 언론보도에 등장 하였다. 이어 1996년 신년 공동사설에서‘붉은기를 높이 들고 새해의 진군을 힘차게 다그쳐 나가자’라는 제목을 내세우면서부터‘붉은기 사 상’의 선전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붉은기 사상’은 심각한 경 제난으로 체제위기를 느낀 북한 지도부가 체제수호의 구호로서 내세 운 것으로 그 선전의 강도를 높였을 뿐 주체사상을 대체할 정도는 아 니었다‘. 붉은기 사상’의 기초인‘붉은기 철학’이 주체의 혁명철학에 기초해서 일심단결의 혁명철학과 신념의 철학을 담고 있는 것으로 설 명되는데, 이는‘붉은기 사상’이 주체사상에 기초하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해 나온 체제수호의 논리라는 점을 말해주 는 것이다.


‘붉은기 사상’은“어떤 배신도 모르며 사소한 사상적 변질도 없는 일심단결의 상징이며 혁명적 지조와 절개로 죽어서도 붉은 기폭에 싸 여 영도자의 품속에서 영생하려는 신념의 기치”로 표현된다. 그러 나 1997년 10월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취임하고 황장엽 망명 (1997.2) 등으로 인한 북한사회의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면서‘붉은기 사상’에 대한 강조도 줄어들었다.



(3) 강성대국론

강성대국론은 1998년에 본격 등장한 이념이다. 1998년 2월 김정일 의 자강도 현지지도 및‘8·15’를 전후하여‘강성대국’이라는 용어가 제시되었다. 이어 8월 22일 노동신문 정론‘강성대국’이 발표되고, 같은 해 8월 31일‘광명성 1호’를 발사하고서는 이를 강성대국으로 진 입하는 신호탄인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는 등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 작하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 건설론은 3가지 측면으로 제시 된다. 첫째는 사상·정치의 강국 건설이고, 둘째는 군사의 강국 건설이 며, 셋째는 경제의 강국 건설이다.


북한은 사상의 강국이란“주체사상에 기초한 당과 혁명대오의 공 고한 사상의지적 통일단결이 이룩된 나라”를 말하며, 군사의 강국 은“강력한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다 갖춘 무적필승의 강군, 전민 무장화, 전국 요새화가 빛나게 실현되여 그 어떤 원쑤도 범접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보루”를 뜻하고, 경제의 강국이란“사회주의 건설 을 다그쳐 경제를 활성화하고 자립경제의 위력을 높이 발양시키면 우리 조국은 모든 면에서 강대한 나라로 빛을 뿌리게 된다”는 의 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2001년 신년 공동사설에서‘신사고’에 기초하여 강성대 국 건설을 위한 모든 부문, 모든 분야에‘종자론’을 관철할 것을 촉 구하였다.‘신사고론’은 강력한 국가경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새세기 의 요구에 맞게 사고방식, 투쟁기풍 등에서 근본적인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으로 과거 다른 나라의 낡은 틀과 관례를 전면적으로 재검 토하고‘우리식’대로의 방법론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강성대국론을 내놓은 배경에는 대내적으로 김정일 시대의 출범에 즈음하여 주민 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이념이 필요하고, 대외적으로는 북한정권이 건재함을 과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 등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4) 선군정치론

1995년 이후 김정일 정치의 특징으로 선전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선 군정치이다.‘선군정치’라는 용어는 1997년 12월 처음으로 등장하 였으나, 군 중시의 정치방식은 김일성 사후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인민군대 강화에 최대의 힘을 넣고 인 민군대의 위력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의 전반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 가는 특유의 정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군사선행, 군 중시’ 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독창적인 위대한 선군정치로 인민군대를 주체혁명의 기둥으로 부강조국 건설의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 경제건설보다 중 요한 것은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며 총대가 강하면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국 방공업은 나라의 부강 번영과 인민의 행복, 혁명의 승리적 전진을 담보 하는 국가정치의 첫째가는 중대사”라고 함으로써 다른 어느 분야보 다 국방력의 강화에 매진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북한은 선군사상이 주체사상에 기초하였고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게 정립된 것으로 주체사 상은 선군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적 지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추구하는 국가의 자주성을 수호하는 것은 선군정치에 의해 서 가능하다고 하여 선군정치가 주체사상을 현실적으로 가장 잘 구현하 는 정치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군정치는 이른바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시기에 군의 정치·경제·사회적 선도역할을 통해 대내외 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군정치는 군 중시의 정치로서“군사를 국사중의 제일국사 로 내세우고 군력강화에 나라의 총력을 기울이는 군사선행의 정치”로 규정된다. 또한 선군정치는“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여 혁명대오를 튼튼히 꾸리고 혁명적 군인정신을 무기로 하여 사회주의 건설을 밀고 나가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북한은 이러한 군 중시 정치를“김 정일 동지의 기상이자 우리 당의 기질이고 김정일 동지식이자 우리 당 의 혁명방식”이라고 하는가 하면“ , 군대는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 이라는 데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다. 군 중시 사상을 반영한 국방위주 의 정치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 선군정치론은 오늘날 김정일체제 유지 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통치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이와 같은 군 우선의 의지를 수시로 표현해 왔다. 1997 년 신년 공동사설은“인민군대의 총창우에 사회주의의 운명과 부강조 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1997년 2월 15일 김정일의 55회 생일을 축하 하여 정권기관들이 보낸 축하문에는“군대가 혁명주체의 핵심역량, 주 력군을 이루며 군대는 곧 인민이고 국가”라고 강조했다. 1998년 3월 9일 노동신문은“군대를 기둥으로하여 혁명을 완성해 나가야 하며 군대를 본보기로 온 사회와 혁명대군을 정예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군 고위간부들의 권력핵심의 인사에서도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도 김정일 자신이 1998년 9월에 이어 2003년 9월, 2009년 4월에도 국가 최고의 직책인‘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었다. 2003년 9월 최고 인민회의 제11기 제1차 회의에서 혁명1세대인 이을설, 백학림 등 군부 원로들이 일선에서 퇴진하였지만 2009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 기 제1차 회의 개최 이후에도 군부 실세인 조명록, 김영춘, 김일철, 이 용무 등 핵심계층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1996년에는 4월 25일 인민군창건일과 7월 27일‘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정전협정 체결일) 등 군관련 기념일을 공휴일이자‘국가명절’ 로 지정하였다.
선군정치의 표방으로 군부의 역할도 확대되었다. 2003년 3월 노동 신문에서“인민군대는 혁명의 주력군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청류다리, 금릉동굴, 금강산 발전소, 문화유적지 건설 등 대부분의 중요 경제건설 사업과 각종 우상화 선전물을 군 인력으로 건설했다. 그 밖에도 군대는 무역회사와 공장, 기 업소, 광산, 협동농장 등을 포함하는 방대한‘제2경제’를 운영하고 있 으며 심지어 농사와 철도운행, 중요 치안업무 등에도 간여하고 있다.


1998년 신년 공동사설에서“인민군대가 창조한 정신과 도덕, 문화와 생활기풍을 사업과 생활에 철저히 구현해 나가야 한다”며 사회가 군 을 따라 배울 것을 독려하였다. 또한‘군민일치 모범군 쟁취운동‘’, 우리 초소 우리학교 운동’을 벌여 군과 사회의 일체화를 꾀하고, 2002년부 터는 군민일치36)·관병일치·군정배합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1월 이후 선군사상을 전체사회에 일색화하려는‘선 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선군사상의 핵심인 혁명 의 수뇌부 결사옹위정신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킴으로써 전 인민들을 체제보위를 위한 전사로 만들고, 혁명적 군인정신을 전 사회에 보급함 으로써 모든 사업을 군대식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여 경제회생의 추동 력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